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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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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료를 2배로 주셨습니다! (주)리챠드프로헤어

당초 약속했던 강사료 보다  2배로 주신 회사! (주)리챠드 프로헤어.
제가 1,095여 회를  출강하면서 강사료를 처음 약속했던 강사료 보다 2배로 받아 본 일은 처음입니다.


회계담당자의 전언에 의하면, 특강에 참여하신 이기용 대표이사님 특별지시랍니다


2시간 특강에 0,000,000원을 받으면서 강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반성해 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주)리챠드 프로헤어 대표이사님를 비롯한 전 임직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리챠드 프로헤어 홈페이지 주소
    http://www.leechstyle.com/



고객에게 ‘행복’주기 위해 고민하는 가위든 사업가, 이기원 대표



"미쳐야 성공할 수 있어요. 우리는 흔히 '미친 사람'을 '정신이상자'라고 하죠.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신이상자가 되어야 해요. 정신을 현실이 아닌 이상에 두었을 때야 비로소 현실에서의 어떠한 어려움도 이상을 향한 집념으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죠."

국내 19개의 직영점을 운영하며 '최단기간 최다 직영점 오픈'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리챠드 프로헤어 이기원 대표의 말이다. '리챠트 프로헤어'의 천장 벽면에는 이런 문구가 크게 휘갈겨져 있다. '우리는 미용이 미치도록 좋다'

'벤츠를 타는 헤어 디자이너'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실제로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용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 소년, 이기원.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소위 '시다'라 불리는 미용실 보조 스텝으로 취직은 했지만 숙식제공 없이 월급은 단돈 3만원. 차비조차 되지 않는 액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신념'같은 문구가 있었다.

      '생생하게 상상하고 열렬히 원하며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행동하면
                              그것이 어떤 꿈이든지 반드시 이루어진다.' - 풀J. 마이어

때문에 그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막연한 꿈을 명확한 이미지로 그려냈다. '월급 500만원', 그리고 '벤츠를 타는 헤어 디자이너'. 이후 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유명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벤츠를 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하며 이겨냈다.

지하철 막차 안. 180cm는 족히 넘을 만한 큰 키에 아직 앳된 얼굴을 가진 한 청년이 자리에 앉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기계적으로 가위와 휴지를 꺼냈다. "벤츠, 벤츠를 타는 디자이너……."

그리고는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휴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내려야 할 역도 잊은 채, 수척한 모습으로 휴지를 가위로 잘라내는 데 열중한 그의 모습은 얼핏 보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도, 돈도, 게다가 믿고 의지할 가족도 없는 소년 이기원의 꿈을 향한 무서운 열정, 그리고 집념이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7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얼마 후 재혼하셨죠. 또  누나는 일찍 세상을 등졌고, 두 형들도 저를 챙겨줄 만한 여력이 없었어요.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저는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했죠"

이 때문일까. 어린 시절 그는 늘 '대장'이었다. 이 대표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늘 대장을 도맡아 했던 건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기려는 저 자신과의 싸움 같은 것 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싸움은 곧 그에게 '싸움짱'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싸움을 하고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결코 학업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도 마저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공부했어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학교를 마쳐야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6개월 간, 독학으로 하루 18시간씩 공부했어요. 정말 독하게 했죠"

결과는 합격. 남들 3년 할 공부를 6개월 만에 마친 것이다. 이일은 그에게 단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낸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라는 자신감을 가져다 준 값진 경험이었다.

이렇게 세상에 불신만 품고 살아오던 소년은 이제, '뭐든지 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고민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헤어 디자이너에서 사업가로


‘헤어 디자이너’는 그의 오랜 염원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가야할 이상이 높았던 그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보통 3년 과정인 스텝 기간을 2년 더 연장해 배웠다. ‘기초가 탄탄해야 그가 꿈꾸는 미래에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5년간의 스텝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헤어 디자이너가 된 그는 한 고객의 머리를 전부 맡아 담당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보조해 주는 스텝까지 생겼다.

또, 한번 그를 찾은 고객은 반드시 그를 다시 찾아왔고 함께 일하던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단골 고객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월급도 올라 예전처럼 끼니를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더 넓게 더 크게 살아가고 싶었다. 때문에 그는 미용실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당시 그는 아직 너무 어렸고 자금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천천히 꿈을 향해 나아갔다. 우선 천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용실에 취직했다. 그리고 그 미용실에서도 가장 많은 고객을 갖고 있었던 디자이너와 생활하며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았다.

남들보다 열심히 기초를 닦은 만큼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다음은 자금. 하지만 수중에 가진 거라곤 단돈 200만원뿐. 당시 천안에서 가장 싸다고 하는 미용실을 얻으려 해도 최소 천만 원은 있어야 했다.

결국 그는 빚을 얻어서라도 미용실을 오픈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사실 미용실을 오픈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텝으로 일하던 아내와 함께 여서 마음만은 든든했죠.”

미용실 이름은 아내 이름을 딴 ‘김혜란 미용실’. 싼 값에 얻은 탓에 의자 두 개만 들여 놓아도 꽉 찰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미용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장사가 잘 되었다. 작고 외진 가게였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

오픈 한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가게 앞은 아침부터 기다리는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미용의자가 두 개 뿐이어서 많은 손님을 한꺼번에 받을 수도 없었지만 오래 기다리더라도 꼭 그의 미용실을 찾는 단골 고객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때문에 가게를 얻기 위해 얻은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는 돈이 저절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용실을 처음 오픈한지 1년 6개월 만에 그의 미용실은 시내로 확장 이전할 수 있었다.

“사실 미용실을 옮기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생애 처음 가져본 가게였고 굳이 옮기지 않더라도 수익이 많았기 때문이었죠. 또 ‘섣불리 가게를 넓혔다가 기존의 고객들도 잃게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앞섰어요.”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에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결단력을 필수. 그는 명성 높은 헤어디자이너이면서 한편으론 사업 수완이 좋은 사업가의 피가 끓고 있었다.

맨손으로 시작할 때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그래도 무리한 가게 이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생긴 가게가 고객의 신뢰를 얻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는 법. 가게를 옮긴 뒤 손님은 생각처럼 쉽게 모여들지 않았다.

그렇게 5개월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미용실은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손님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시내에 어렵게 문을 연 미용실도 성공. 그와 아내는 다시 1년 반 만에 100평짜리 가게를 오픈했고 고객들은 줄을 이었다.

이후 그는 줄곧 꿈꿔왔던 300평짜리 공간을 공략했다. 그곳은 바로 천안에서 가장 유명했던 나이트클럽의 터. 미용실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천안에 돌아올 때부터 ‘이 곳에 미용실을 얻어 의자 백 개를 놓겠다’고 눈여겨 봐 놓았던 곳이었다.

결국 그는 그 곳에 세 번째 지점을 오픈했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음 가졌던 목표대로 의자 백 개를 놓았다. 이곳이 바로 현재 리챠드 프로헤어 3호점이다.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기원 대표. 300평 공간에 의자 백 개. 이는 현재까지도 단일 층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미용실이다. 주차장, 복도 등을 제외한 실 평수가 3백 평이 넘기에 천안에서는 명물로 통할 정도.


섬세한 카리스마, 이기원 대표의 ‘리챠드 프로헤어’


19개의 대규모 고급 매장과 질 높은 서비스로 한번 온 고객은 평생 고객으로 만들고 있는 ‘리챠드 프로헤어’. 천안 미용 수요의 절반 이상을 책임져 지역 내에서는 ‘리챠드 왕국’이라 불릴 정도다.

이렇게 그는 현재 천안은 물론 평택, 오산, 대전지역을 평정하고 일산 그리고 서울의 강남, 명동 등 전국에 총 19개의 직영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스물다섯 살에 의자 2개를 놓고 시작한 미용실에서 충청권 미용업계의 황태자를 거쳐 서울에까지 입성한 것이다.

그는 한 번 생각한 일은 이루고야 마는 성격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기로 한 일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 때까지 ‘올인’한다. 이런 그가 사업 초기부터 항상 고민해 왔던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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